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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번줄만 세 개... 군대는 내 인생의 스승\" 국제대학교 장병집 총장 -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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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영

염소 치던 소년 목동, 대학 총장에 오른 ‘도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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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에서 부사관으로, 다시 장교로. 10여 년간 이어진 군 생활이 한 남자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가난 탓에 중학교도 못 간 염소 치던 소년이 군대를 거쳐 교수, 경영학 박사, 국립대학교 총장까지 오른 것.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삶의 주인공은 ‘군대는 인생의 스승’이라 강조하는 국제대학교 장병집(65) 총장이다. 그의 입지전적 인생은 젊은이들에게 ‘꿈꾸고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 그 자체다. 스승의 날을 앞둔 9일 국제대학교에서 인사성 바른 밝고 건강한 군사학과 학생들과 함께 장 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야학 다니며 검정고시 치르고
학구열 뒤로하고 ‘가난’ 때문에 군대로…
 

“예비역 육군소령 장병집. 제 인생의 모든 방향을 결정한 가장 자랑스러운 이력입니다.”

장병집 총장은 군번이 세 개다. 병사로 시작해 부사관, 장교를 모두 경험하고 소령으로 예편했다. 군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은 다름 아닌 ‘가난’이다. 장 총장은 6·25전쟁 중이던 1953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누나만 셋을 둔 귀한 막내아들로서 초등학교는 다닐 수 있었지만, 가난 탓에 중학교는 꿈도 꾸지 못했다. “또래들이 책가방 들고 읍내 중학교로 향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나무하러 깊은 산속으로 향했죠. 그때의 서러움과 먹먹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장 총장의 회상이다.

열다섯이 된 시골 소년은 돈을 벌고 싶었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고구마 몇 자루를 가지고 홀로 상경해 도봉산에서 염소를 기르는 목동이 됐다. “목장 주인의 도움으로 야학을 다니며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어요. 성적은 좋았지만, 학비가 없어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없었죠. 그래서 국비가 제공되는 고등학교를 선택했고, 졸업 후 의무적으로 군에 입대하게 됐습니다. ‘가난’이 군대와 소중한 인연을 맺는 연결고리가 된 셈이죠.”

장 총장은 행정상의 실수로 야전부대에 이등병으로 배치됐다가 다시 ‘하사관학교’에 입교한다. 그는 이때를 군 생활 10여 년 가운데 가장 힘든 시기로 기억한다.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습격을 기도한 1·21 사건이 터진 직후 하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 절반이 강도 높은 유격·공수훈련이었고, 인간 단련의 극한을 경험했죠.”


부사관 - 장교 - 군사교육교관 - 총장
군에서 배운 도전정신은 나의 원동력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고 신임 하사가 된 장 총장은 다시 한번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가계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부모님 몰래 월남전 참전을 지원한 상태에서 장교를 지원하게 된 것. “이미 파병을 지원한 상태에서 육군3사관학교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죠. 파월을 위한 막바지 훈련을 받던 중 사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았고, 결국 3사관학교 10기 생도가 됐죠.”

장 총장은 임관 이후 주로 장군들을 모시는 전속부관 보직으로 근무했다. 그 속에서 평생의 자산이 될 값진 경험과 소중한 인연을 쌓았다. “백마고지에서 근무했던 대위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맺었던 선후배 전우들과의 인연은 3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역 후에도 군과의 특별한 인연은 계속됐다. 1981년 예비역 장교로서 충주공업전문대학의 군사교육교관이 된 것. 그러나 그의 도전에는 쉼표가 없었다. “교관이 된 다음엔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팔자에 없는 꿈일까 싶었지만, 도전하고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신념으로 도전했죠.” 주경야독으로 학사·석사를 마친 장 총장은 그토록 꿈꾸던 교수가 됐고, 이후 경영학 박사까지 취득했다. 그의 끝없는 노력은 더 큰 결실로 이어진다. 2008년,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국교통대학교(전 충주대학교) 5대 총장까지 오르게 된 것.

“제 인생에 군대가 없었다면, 소년 장병집은 목동, 나무장수, 쌀가게 주인에 머물렀을지 모릅니다. 군대가 제 인생의 모든 방향을 결정했고, 그곳에서 배운 것들이 지금 여기까지 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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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땐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어요
오늘날 청년들 끝없는 경쟁 현실 안타깝죠
힘들고 어려운 군 생활, 회피해봤자 도움 안 돼…
삶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결심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수준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의 품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장 총장의 유창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는 그의 깊은 통찰력과 교양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오랜 기간에 걸친 많은 공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품위’였다. 물론 장 총장도 공부가 좋아서 한 것은 아니다.

“공부보다 재밌는 일 많죠. 저도 (공부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단, 제가 살았던 시대는 못 먹고 못 입었어도 늘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어요.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서 책임감을 갖고 노력했던 것뿐이죠.” 한편, 장 총장은 오늘날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에 안타까움도 표현했다. “노력의 대가가 예전만큼 뚜렷하지 않은 시대예요.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이죠.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려고 끝도 없이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큰 성취를 거두는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청년들이 꼭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도전하는 자, 노력하는 자만이 성공을 이뤄낼 수 있음을.”

아울러 장 총장은 청년들에게 “군 생활은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하라”고 조언했다. “군 생활은 힘들고 어렵죠. 그렇다고 그 시간을 회피하는 자세로 보내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힘들고 더 길게만 느껴지죠. 군 생활을 삶에 도움이 되는 발판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세우세요. 저는 그런 자세로 군 생활을 했기에 평생의 자산이 된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얻었어요. 군은 당신의 삶이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고마운 원동력이 될 겁니다.”
 
 
5개 군 기관과 협약 맺은 군사학과
국내 최고의 임관시험 합격률 ‘자랑’
 

국제대학교 캠퍼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누굴 만나도 큰 목소리로 밝게 인사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국제대학교는 인사 잘하는 대학으로 이름난 대학입니다. 저 역시 학문·기술 이전에 인성이 바로 선 젊은이를 키우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임기가 시작된 장 총장에게 학교 자랑을 부탁하자 겸손하지만, 확신에 찬 답이 돌아왔다. “이제 겨우 석 달째라 학교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제가 느낀 것은 국제대학교는 대단한 가능성이 있는 대학이라는 점입니다. 밝고 건강한 학생, 정성을 쏟아 지도하는 교수진이 우리 학교의 자랑이죠.”

국제대학교의 자랑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군사학과’다. 국제대학교 군사학과는 육·해·공군과 특전사령부, 3사관학교 등 5개 군 기관과 협약을 체결한 수도권 유일의 군사학과다. 학교가 있는 평택 지역에는 다수의 육·해·공군 부대가 존재해 활발한 현장 교육이 가능한 강점도 있다. 주한미군 평택 이전과 맞물려 국제대학교 군사학과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게 학교 측의 전망이다.

군사학과에 대한 장 총장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교수 수준이 학생 수준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제대학교 군사학과는 육·해·공군에서 30년 이상 복무한 장군, 대령급 장교와 상사급 이상 부사관을 중심으로 교수진을 구성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지원합니다. 우리가 국내 최고의 임관시험 합격률을 달성하고 있는 배경이죠.”

이날 장 총장은 군사학과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캠퍼스를 거닐었다. ‘인성이 실력을 이긴다’, ’인사를 잘하자’, ‘노력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 ‘꿈꾸는 자가 되라’는 장 총장의 따뜻한 조언에 학생들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뒷모습은 총장과 학생을 넘어 존경받는 아버지, 사랑받는 아들·딸과 같았다.


장병집 총장은?

1953년 충북 괴산 출생.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검정고시를 통해 국비 장학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졸업 후 군에 입대해 병사·부사관·장교를 모두 경험하고 1981년 육군소령으로 예편한다. 이후 군사교육교관으로 시작해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 2009년에는 한국교통대학교 5대 총장에 올랐고, 2017년 국제대학교 10대 총장에 취임했다.
 
 
출처 : 김상윤 기자, "군번줄만 세 개... 군대는 내 인생의 스승", <국방일보> 2017년 05월 11일